1928년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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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캠핑카 조회 0회 작성일 2021-06-20 15:35: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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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유학생 이극로 박사의 1928년 육성녹음

[코민테른 유학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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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은 맹자의 ⼀樂也, ⼆樂也를 건너뛰고 '得天下英才⽽敎育之, 三樂也'를 ⼀樂也라 쓰신 이유는 영재를 교육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거다. 지운 선생은 서당의 서택환 훈장이 보여준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돌린 '조선 천지에 똑똑한 젊은이는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구라파로 로시야로 하다못해 일본으로라도 유학을 가서 신식문물을 배워 미래를 대비하라'는 사발통문을 보고 일본으로 유학을 나왔다. 그리고 1915년 성우 이명직 대감이 동탄 자택에서 일제에 독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독립투쟁의 길에 떨쳐나섰다. 1921년 코민테른 군자금을 받아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조선의 영재들을 미국으로 구라파로 유학을 보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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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동휘 선생이 레닌과 독대할 때 조선의 철도와 철도망을 물어볼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망신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재육성이야말로 사회주의 혁명의 성패를 가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때 코민테른의 군자금으로 유학을 하러 간 조선의 인재와 중국의 인재들이 있다. 양국 각각 40명씩을 선발하여 여비와 학비 그리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했다. 조선 유학생 40명 중 20명은 미국으로 보내고 20명은 구라파로 보냈다. 인재육성 자체가 유학의 성패를 따지지 않았기에 유학생들에게 어떠한 요구 조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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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해 동제대학 예과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모색하다 결국 1921년 독일로 유학 가서 1927년 독일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현 훔볼트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은 이극로(李克魯, 1893~1978) 선생은 꼬박꼬박 안부와 유학 진행 상황을 전해왔고 견문을 넓히고자 영국 유학을 거쳐 세계 일주를 하며 미국 독립운동 인사들과 교류도 했다. 유학 후에는 조선어학회에 참가하여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항거하다 옥살이까지 했다. 유학 시에는 베를린대학에 조선어강좌를 개설하여 직접 조선어 강의도 했다. 또 불란서 문화원에 조선어원리를 녹음으로 남겨 불란서가 그 녹음 디스크를 보물로 지정했다. 이극로 선생은 1948년 4월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잔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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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중퇴한 나용균(羅容均, 1896~1984)은 김구 임정에서 지운 선생 제거에 협력하다 지운 선생이 만나 따지자 김구 임정과 단절하고 코민테른 장학생으로 영국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지운 선생이 특별히 영국유학을 지원하여 1923년 영국유학을 갔다. 하지만 어느 학교를 입학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장학생으로서의 보고의무를 이행하지 않다가 지운 선생이 경상도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을때 귀국했다. 나용균이 생전에 주장한 바로는 1923년 옥스포드대학에 입학했다가 1930년 런던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해방후에도 지운 선생을 피해다니며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부와 권세를 누렸다. 사람좋은 지운 선생이 나용균을 고약하게 생각하는 것은 2.8독립선언도 참가를 꺼려 이름도 올리지 않은게 독립운동은 저혼자 다한거처럼 떠들다 죽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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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운 선생은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유학자체가 기적이던 시절에 코민테른 군자금으로 유학생들을 서구로 보냈다는 자체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잠시 중국공산당을 위해 지급한 40명분의 장학금에 대해 돌아보자. 중국공산당은 북경대교수인 진덕수는 40명분의 장학금으로 196명을 선발해서 불란서로 유학을 보냈다. 학위취득 유무를 불문하고 등소평, 주은래 등 그 유학에서 돌아온 196명 대부분의 인재들은 모택동과 함께 고난의 투쟁을 거쳐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는데 기여하고 중국을 이끌었다. 사리사욕에 코민테른 장학금을 이용한 조선의 젊은이들과 극명하게 대별된다. 그 조선 인재들의 유학결과가 파당과 파벌을 만들고 남한땅을 사리사욕의 아사리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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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주의※ 휴대폰이 전셋값이던 시절부터 지금의 5G까지

5G 시대를 맞은 스마트폰, 과거 벽돌폰이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휴대폰 변천사를 모아봤습니다.

#5G #스마트폰 #휴대폰역사 #아이폰 #갤럭시
김대광 : 여기서 삐삐 써보신분 계신가요
말없이 영상 찍는 의문의 사람 : 와우...대박이다.완전...이건 좋아요를 눌러줘야해!
성부현 : 와 5G시대 미쳤다
ZLOL지롱 : 0:46 왜 피부가 녹색이지???
atte L : 우리 할아부지가 저때 꽤 잘살아서 벽돌만한 휴대폰이랑 똥색차 있었다구 함... 아빠쓰의 술 먹다가 얘기한거라 더 믿음이 있당

[2편] 100년 전 한국어?_1920년대 우리말 발음은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1920년대 당시 말을 들어도 우리가 알아듣는것은 한국어에 #사라진발음 이나 달라진 발음을 우리의 뇌가 비슷한 다른 음으로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까와 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 두 글자를 모두 같은 음으로 뇌가 인지하기 때문이죠. 국어학자 #이극로 선생의 음성을 들으며 지금 말과 달라진 발음들을 찾아보세요

#조선어학회

출처: 프랑스 국립 아카이브에서 발췌

이극로선생의 음성자료를 최초로 발견한 블로그
http://veritasest.egloos.com/1964446
Michelle choi : 아.... 감동..... 우리말 소중히 여기자. 억지 말 줄임 쫌 쓰지 말고.
구기 : 이것을 올려 준 TV노노노,
참 고맙고 기특하도다.
이월령 : 귀한자료 감사합니다.이 자료가 널리퍼져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네요.
사람을 사람이 신과같이 귀히 여겨야한다 그어떤 명분도 가치도 사람의 생명과 자유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극로 선생님의 나라의 독립과 언어를 잃을지 모를 후손들을 위해 애쓰신 노고에 감사드리며 남기신 말씀도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
이월령 : 진짜 ㅠㅠ 계속눈물이...들으면 들을수록 절박함이 느껴져서...으앙ㅜㅜ
Helen Killer : 지금 경상도 말이랑 완전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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